일상 이야기

키니스 장난감병원 할아버지들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랑이있는 나무 2023. 10. 19. 19:35

키니스 장난감병원 할아버지들의 슬기로운 의사생활

 



기술 봉사로 아이들과 세대 공감하는 노인들
평균 연령 70대 장난감 박사들 “애착 장난감 동심 지켜주고파”
공고 퇴직 교사 등 기술 봉사… 매년 1만개가량 무료로 수리
“전국에 장난감병원 생겨서 장난감 없이 크는 아이 줄어들길”
줄어든 장난감 개수 보며 저출산 문제 심각성 피부로 느끼기도

장난감과 할아버지. 친근하고 익숙한 조합이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나무 인형 피노키오를 만들었다. 영화 ‘나 홀로 집에 2’에서 케빈이 찾아간 뉴욕의 장난감 가게는 크리스마스 수익을 어린이병원에 기부하려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가 운영했다. 울지 않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도 빼놓을 수 없다.

장난감과 할아버지의 만남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인천 미추홀구의 주안시민지하도상가에는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는 ‘키니스 장난감병원’이 있다. 이 병원의 의사들은 모두 할아버지. 일명 ‘장난감 박사’로 통한다. 병원 이름 ‘키니스(Kinis)’는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노인을 뜻하는 ‘실버(silver)’를 합친 말이다. 장난감을 매개로 노인과 아이가 세대 간에 공존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난달 찾은 장난감병원은 긴장이 감도는 수술실 분위기 대신 오르골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전국의 장난감 보호자가 보내온 감사 편지가 수술실 벽면을 장식했다. 장난감 박사들의 개인 수술실에는 장난감을 치료하는 공구들이 빼곡하게 걸려있었다.

매일 전국에서 온 택배 상자가 장난감병원 앞에 수북이 쌓인다. 지난해 들어온 택배는 약 3300건. 장난감을 들고 방문한 건까지 합하면 5000건이 넘는다. 보통 1건당 장난감이 2개씩 들어와 장난감 박사들이 1년간 치료하는 장난감 수는 1만개에 달한다.

장난감을 고치는 건 아이와 엄마 모두의 행복이 달린 문제다. 장난감 치료 접수가 이뤄지는 키니스 장난감병원 인터넷 카페에는 최근 아이가 제일 사랑하는 댄스 로봇 장난감을 일주일간 입원 치료시켰다는 엄마의 글이 올라왔다. ‘로봇이 목소리를 되찾아 이제야 밥을 먹을 수 있겠어요. 너무 감사해요.’

◆퇴직 후 장난감 박사 된 고교 교사

장난감병원에서 가장 많이 치료하는 장난감은 모빌이다. 올해로 병원에서 근무한 지 7년 차인 원덕희(69) 박사가 모빌 수리를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안 좋은데, 1년에 아기를 20만명 낳아요. 그중에 10만명 정도가 모빌을 써요. 아이가 6개월 돼서 몸을 뒤집기 전까지 모빌을 보는 거죠. 엄마는 그때 가서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거고요.”

원 박사는 장난감 박사가 되기 전 36년간 교직에 몸담았다. 전기기능사를 준비하는 공고 학생들에게 매일 실습을 시키다 퇴직 후 아이들의 모빌 장난감을 만지게 된 것이다.

그는 최근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몸이 아파서 장난감병원에 나오지 못할 때면 아이들이 ‘빨리 나와서 고쳐 달라’고 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는 “와서 장난감을 고치다 보면 아픈 것도 잊어버린다”며 미소를 지었다.

원 박사는 “당 보충하라”고 장난감과 함께 보내온 사탕 한두 개에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은 정성은 지난 2019년 키니스 장난감병원이 코오롱그룹의 우정선행상을 받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들이 심사하러 병원을 방문했을 당시 도착한 택배 상자에도 장난감과 함께 편지와 과자가 들어있었다. 원 박사는 “(심사위원들이) ‘그래 이런 맛에 (봉사)하는 거지’라고 말하더니 통과가 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습게 보면 오산… 장난감은 종합 예술”

세상을 살아온 연륜이 있는 박사들은 장난감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깊이가 있었다. 자장가를 들려주는 장난감을 치료하고 있던 이종균(80) 박사는 “이 세상에 장난감이 몇 개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원시인들의 생활 도구부터 시작해 공룡, 칼과 활, 자동차, 비행기, 로켓 등 이송 수단, 육해공 동물, 우주비행사, 놀이동산에 이르기까지 모두 장난감으로 만들어졌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박사는 “장난감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난감 재료인 플라스틱, 쇠, 고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전기, 전자, 물리, 기계 등 과학의 모든 분야와 관계가 안 되는 게 없다”며 “(장난감을 수리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예술’까지 가미되니 종합 예술이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장난감 없이 크는 아이들 줄어들길”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김종일(77) 이사장이 지난 2011년 인하공업전문대학교 교수직을 은퇴한 뒤 차렸다. 그는 ‘시간과 돈을 들여서 하는 게 봉사’라는 일념으로 장난감병원을 운영해 왔다. 후원금만으로 부족해 사비를 들여 장비 비용, 관리비, 임대료 등을 충당하느라 금전적인 손해도 컸다. 그런데도 병원 문을 닫을 수 없었던 건 오로지 아이들 때문이었다.

김 이사장은 “장난감은 아이들이 태어나서 제일 처음 갖는 재산(소유물)이라 아이들의 애착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것이 망가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떻겠냐”며 “그 마음을 지켜주기 위해 장난감병원을 하는 거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장난감병원을 시작할 당시 한 해에 40만명 넘게 태어나던 아이들이 지금은 27만명으로 줄었다. 김 이사장은 “(10여년 동안) 해마다 만명씩 줄면서 장난감병원에 오는 (장난감) 수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키니스 장난감병원은 최근 인천시노인인력개발센터와 ‘장난감 척척박사 사업 활성화와 맞춤형 일자리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김 이사장은 아이뿐 아니라 노인들을 위해서도 장난감병원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인들이 어딘가에 소속돼 자꾸 만나서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면 그 자체로 뭐가 된다”며 “이런 걸(장난감병원) 자꾸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들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않는 게 장난감이기도 했다.

김 이사장은 지금은 인천과 수원에만 있는 장난감병원이 전국에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서로 장난감을 주고받고 하면 장난감 없이 크는 아이들이 줄어들 거 아니겠어요. 내가 줄 수 있는 장난감은 한계가 있단 말이죠. 내 꿈은 그겁니다.”

출처 : https://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073314